2020년 회고

코로나.
언제 부터 시작된 건지 이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난 일년은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일단, 7살 딸내미가 유치원에 가지 못했다. 계속 되는 휴원에, 잠깐이라도 등원 할 수 있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을 찾아 여러번 옮긴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성당유치원, 교회유치원, 병설유치원, 국공립어린이집 등 참 많이도 바꿨다. 아이가 어디든 적응을 잘하니 믿고 보내봤던 건데,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못할 짓이 었다.

결국 도심을 떠나 산이 보이는 곳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신도림을 떠나 구리로 이사를 했다. 한쪽 창문으로는 해가 뜨는 것을 보고 반대 쪽 창문으로는 노을이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계절이 변하는 것과 하늘의 색이 변하는 것을 느끼며 살게 되었다.
이사를 하고 제일 불편한 점은 이동네 커피숍은 10시에 연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느리게 돌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다들 여유로운 것 같기도 하다.

그다음 달라진 것이 이동 수단이다. 2007년에 면허를 딴 것 같은데, 그 뒤로 운전을 할 일이 없었다.
개인 적으로 탐험가 성향이 아니라서, 코로나 이전에도 평생을 집 학교, 집 회사의 반복으로 살아 왔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것을 빼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삶이었다.
아이와 놀러 다닐때도 여행을 갈때도 언제나 뚜벅이로 다녔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환승하고 유모차를 끌때나 짐이 있을때는 엘리베이터를 찾아 돌아 돌아 길을 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그 순간들이 좋았다. 언제나 아이와 손을 잡고 다니거나 안고 다녔다. 항상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대중교통을 아이와 함께 탄다는 것은 큰 위험이 었다.

그래서 차를 샀다. 장롱면허 13년 차를 청산하고 운전을 시작했다. 정성스레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시작을 했다. 개인적으로 최근 10년 중 가장 큰 도전이 었던 것 같다. 그래도 조심성 많은 성격때문인지 안전하게 잘 하는 것 같다. 아직 3000km 도 안 탄 초보지만.. 이제 운전하는데 두려움은 없어졌다.
운전을 하면서 느낀 것은, 매일 다니던 익숙한 길도 차로 가니까 완전히 다른 길이라는 것이다.
처음 운전 할 때, 매일 걸어 다니던 길을 네비게이션으로 미리 보고 머리 속으로도 시뮬레이션을 하고 출발 했지만 언제나 헤맸던 것 같다.

There’s a difference between knowing the path and walking the path.

2011년에 회사에 입사해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팀에 계속 있었다. ‘개발은 이렇게 해야 한다. 일하는 방법은 이런 방법론을 따라야 한다. 이렇게 하는게 올바른 방법이다.’ 를 주장하는 팀 들에 있었다. 회사 생활 10년간 가장 많이 따라다닌 단어가 Agile 이었다. 애자일 하게 개발하는 것, 애자일하게 일을 하는 것, 많이 공부도 했고 시도도 해봤다. 물론 안전한 공간에서…
올해 가장 달랐던 것이 바로, 그 동안 알고 있던 것들로 제품을 만드는 것 이었다. 책도 많이 봤고 강의도 많이 들었었다. 실제 제품을 개발한다면 이렇겠지.. 라고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도 많이 해봤다. 나름 애자일 전문 개발자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하지만 역시,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은 달랐다.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었고, 내가 알고 있던 것들로 일이 해결되는 일도 없었다.
그저, 팀원 들과 함께 계속되는 선택의 결과들이 쌓여 가는 것이 었다. 그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해가면서 제품을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선택의 결과가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고, 내가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여전히 많은 것이 엉망이고, 여기 저기 깨진 유리창이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스스로 선택해온 결과물 이다. 돌아 보면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선택의 결과들이다.

코로나는 계속 될 것 같다. 최소 일년은 지금과 같을 것이다. 백신으로 모든게 해결되 더라도, 심리적인 것이 해결되려면 몇 년이 더 필요할 것 이다.

2020년
많은 것들이 혼란 스러웠다. 정돈 되지 못하고 불안한 날들이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함께하자고 하는 외로운 싸움들의 연속이 었다.
그로 인해 나를 좀더 알게 된 한 해였던 것 같다.

2021년에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은 하지만 정상적으로 다닐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난 계속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겠지만 재택을 하는 날은 더 많아 질 것 같다.

새로운 한 해에 어떤 새로운 일이 펼쳐질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2020년이 끝나갈 즈음 기술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것을 이해해주고 비슷한 선택을 해온 팀원을 만났다는 것이다. 더이상 외로운 싸움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새로운 실패를 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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